[인물탐방] 함께 노력하는 이웃사촌

신동훈 1962년생 신세계서울병원 행정원장
외상이 아닌 마음을 살피다
신동훈 씨는 1962년 당산동에서 태어났다. 부인을 처음 만난 것은 춘천행 기차 안. 친구들과의 여행길에 우연히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났다. 각고의 노력 끝에 연애에 성공했다. 6년의 연애를 거쳐 1991년에 결혼했다. 신길동에 보금자리를 꾸리고 아이들을 키웠다. 신동훈 씨는 지금도 연애하는 기분이라고 한다. 퇴근이 늦어져도 저녁 식사는 꼭 부인과 함께한다. 가장이나 아버지로서 권위를 차리는 것보다 자녀를 가족 구성원으로 존중하고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 좋았다.
성장 과정에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일까. 아들과 딸 모두 의료 행정과 가까운 일을 하고 있다고. 평생을 영등포구 안에서 살았다. 신길동에서 아이들을 키우다가 직장을 따라 대림동으로 이사했다.
신동훈 씨가 처음 다녔던 직장은 대림성모병원. 대림동에서 60여 년은 된 병원이었다. 신동훈 씨는 그곳에서 1989년부터 일했다. 2022년에 정년퇴직하기까지 총 33년의 세월이었다.
정년퇴직 후, 같은 해에 개업했던 다른 병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그때부터신세계서울병원의 행정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병원의 행정 업무. 사실 병원 행정직은 병원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역할이었다.
병원에서 일한다고 하면 으레 의사나 간호사를 떠올리기가 쉬웠다. 그러나 신동훈 씨는 처음부터 병원 행정직을 바라보았다. 병원에 방문할 때 조금이라도 마음을 편하게 하는 역할은 행정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신동훈 씨는 행정직의 업무를 설명하며 덧붙였다. 병원을 기분 좋게 방문하는 사람은 없다고. 직접 진료를 받는 환자, 보호자, 병문안을 오는 사람까지도 웃으며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은 없었다. 병원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적어도 따뜻하게 맞이해 마음이라도 편히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병원의 행정직을 생각하며 보건행정학과 의료경영학을 전공했다.

그 중에서도 행정원장은 전체 행정을 전담하고 총괄하는 일을 맡았다. 병원의 경영부터 비전 수립, 장기 발전에 대한 계획을 도모했다. 병원에 오는 민원을 담당하는 것도 행정의 역할이었다. 또 진료와 수술 등 의료 일정으로 바쁜 의사들을 대신해 외부 일정에서 병원을 대표하기도 했다.
매일 바쁜 일정을 소화 중인 신동훈 씨를 만난 곳은 2025년 대림1동민 한마음체육대회. 행사의 의료지원을 나온 것이었다. 과거 대림성모병원에서 일할 때부터 마을 행사와 지역 사회 모임에 참여하곤 했으니 그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신동훈 씨는 대림성모병원이 영등포 지역 사회의 한 축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대림성모병원은 1969년, 영등포기독병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원하고 1년 뒤인 1970년, 지금의 대림성모병원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대림성모병원은 오랜 시간 대림동에 자리를 잡고 지역의 다양한 행사에 의료지원을 나갔다. 그 일을 도맡아 진행한 이는 행정을 담당하는 신동훈 씨였다. 그 영향으로 직장을 옮긴 지금도
마을 행사에는 꼭 의료지원을 나가고 있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행사에는 생각보다 위험한 일이 많았다. 과격한 운동으로 다치거나 행사 중에 사고가 나는 일이 허다했다. 마라톤 대회 중 심정지가 온 위급 환자를 응급 처치해 목숨을 구한 적도 있고, 행사 중 허리 골절 사고를 겪은 구민을 병원으로 이송하기도 했다. 이런 커다란 사고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신동훈 씨는 늘 바쁘게 움직인다. 행사는 주민들이 건강을 검진할 기회기도 했다. 여러 이유로 병원에 방문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리에서 혈당이나 혈압을 검사할 수 있도록 기기를 모두 챙겨둔다. 이런 의료지원은 일종의 봉사활동이었다.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것에 뜻을 함께하는 의료진들이 자발적으로 지원에 참여했다. 마을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오래되었다. 영등포 새마을회 이사와 영등포구 체육회 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대림1동 주민자치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영등포구 봉사단체인 둥지 플러스 봉사단에서도 운영위원으로 있다. 자연스럽게 지역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갔다.
지금의 직장은 대림동 바깥에 있지만 계속 대림동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이유기도 했다. 당연히 대림동의 다양한 주민들과도 교류가 잦았다.
신동훈 씨는 대림동의 마을공동체가 더욱 활발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먼저 시작하는 교류
대림동에는 중국동포가 많이 살고 있다.
오래 전부터 대림동에서 살았던 신동훈 씨는 그들이 모이는 흐름을 직접 지켜본 산 증인이기도 했다. 주변의 이웃에 관해 묻자, 아직 신동훈 씨가 사는 아파트에는 중국동포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주로 대림동 내에서도 개발이 덜 된 지역에서 사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는 아직 사각지대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실제로 신동훈 씨는 이주민이 늘어나던 초창기, 의료 보험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중국동포들을 보기도 했다. 그런 이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다 뜻이 맞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돈을 모았다. 수술이나 진료비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타국 생활로 소통이 어렵고, 알고 있는 정보도 적은 사람들이었다. 의료 정보를 제공하고 보조하는 것도 신동훈 씨가 하는 일 중 하나였다.
신동훈 씨는 각자의 삶에서 더 잦은 교류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진정성 있게 상대를 대하는 것이 친밀한 관계의 시작일 것이라고. 그는 대림동에서 살아가며 알게 된 중국동포가 많았다. 그들에게 큰일이 생기면 앞장서서 함께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경조사가 있으면 꼭 얼굴을 비췄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눴다. 메시지 등으로 마음을 전하고 끝날 수도 있었다. 그것 역시 교류의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통하려면 할 수 있는 전심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신동훈 씨의 노력은 받아들여졌다.
2025년 3월, 신동훈 씨의 장남이 결혼할 때는 그들도 찾아와 축하를 전했다. 다 똑같은 사람, 기쁨이나 슬픔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열게 되는 건 당연 했다. 예전만 하더라도 병원의 브랜드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환자들이 많았다. 각종 질병에 따라, 유명한 대학 병원을 찾아서 가는 것이 최고였다.
신동훈 씨는 그런 기류가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병원에 소속된 의사의 전문 분야를 살피거나, 병원 전체의 분위기를 보는 경우도 많아졌다. 한국인도 넘치는 정보 속에서 진짜를 찾아내느라 힘들 때가 많았다. 하물며 소통이 어려울 수 있는 중국동포들은 어떻겠나 싶었다. 이웃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니, 신동훈 씨를 타지에서 만난 보호자로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를 믿고 병원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 신동훈 씨는 동포들에게 수술이나 치료를 권하거나, 기꺼이 다른 병원을 추천하기도 했다. 어떤 질병인지에 따라 더 좋은 곳을 연결해주며 진심으로 그들의 쾌유를 바랐다.

신동훈 씨는 바깥에서 보는 대림동의 이미지에 대해 말하며 아쉬워했다.
아직도 중국동포에 대한 선입견이 많았다. 대림동을 통틀어 낙후된 이미지를 떠올리는 건 예삿일이었다. 부정적인 이야기는 유난히 자주 언론에 등장했고, 무서운 곳이라는 선입견은 미디어와 SNS로 굳혀지곤 했다.
함께 사는 이웃이고,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이들인데 무언가 잘못한 사람들인 것처럼 비치는 것이 속상했다. 작게는 언어나 음식, 크게는 문화까지 다양한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를 수용하고 나아가려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신동훈 씨는 중국동포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행사나 프로그램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만약 누군가 대림동으로 이사를 망설이고 있다면 안심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직 개발이 부족하긴 하지만, 요즘 느끼기 어려운 옛정이 가득한 곳이다.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모두 단합해서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마을공동체에 소속되어 더불어 사는 것을 바란다면 대림동은 가장 좋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동훈 씨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꺼냈다. 형제 지간에서도 생각의 차이는 있고, 사는 지역이 멀어지면 그만큼 먼 사이가 되기도 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이웃은 수시로, 늘 만나는 사이다. 진정성을 갖고 상대를 대하는 것, 신동훈 씨는 그것이 좋은 이웃의 시작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병원은 아프기 전에 오세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신동훈 씨는 그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병원에 가보라는 말이 부정적인 어감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미리 위험을 알아차리고 예방할 수 있도록, 모두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병원을 찾는 이들에게 국적이나 성별, 문화의 차이가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자료/영등포문화재단 편집/이호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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